물질적 자산과 정신적 유산의 가치
한 세대에서 무언가 큰 대업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물질적 자산이 뒷받침 되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들보다 앞선 출발선에서 달리기 때문이다. 어린시절부터 별로 걸리는 것 없이 통과되기 때문에 정신이 심플하고 효율적으로 성장한다. 물질적 자산을 바탕으로 정신적 자산이 정곡으로 자라난다.
물질적 자산을 바탕으로 자랄 때 그 바탕에 대한 의존성이 있다. 그 의존성은 어느정도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물질적 자산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 자산이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큰 일을 치루거나 밑바닥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 자산이 있다면 이런 좌절감은 경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물질적 테두리를 떼어내야만 만날 수 있는 고유함의 가치는 얻을 수, 느낄 수 없다. 그것을 떼어내기란 쉽지 않다. 붙어있는 것을 느끼기 힘들다. 실제로 떼어져야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유산은 물질적 자산으로 어느정도까지 커버가 되지만 고유의 정신적 자산의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물질이 눈을 가린다.
물질적 자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필요하다. 물질적 자산을 토대로 정신적 가치를 세우는 것과 순수 정신적 가치를 세우고 물질적 자산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외부적인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별 차이가 안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장기적으로 정신적 자산의 가치는 강력하게 흐르게 된다.
정신적 가치 그리고 이 진정한 정신적 유산의 가치를 사람들이 모르는 이유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이유는 효과가 잘 느껴지지는 않고 정말로 꾸준히 온 신경을 집중해 제대로 해야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자산, 정신적 유산을 남기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부모
물질적 자산은 큰 결핍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생활하면 된다. 다만 물질적 자산이 필요한 이유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안전망과 포지션을 형성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데 힘이 된다. 그렇다고 너무 의존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후에 이 테두리를 벗어나는 경험도 필요할 것이다.
물질적 유산이 욕심과 만났을 때 파멸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물질적으로 성립된 가족관계는 왜곡이 된다. 성인이 된 순간 물질적, 정신적 독립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정신적 유산은 의존이 아닌 독립적으로 있을 수 있다. 정신적 유산은 부모의 잔여물이 아니다. 자식이 변형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정신적 유산이 된다. 같은 것이 물려내려가는 것이 아닌 유동적 인사이트, 영감, 방법 등과 같은 소켓 형식이다.
정신적 유산을 남기는 부모는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부모로써 물질적 유산이 아닌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욕망을 뺀 자식의 고유성을 인정한 채 주는 정신적 유산은 물질적 자산까지 물려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격인 셈이다.
조상들의 까르마와 정신적 유산 그리고 후대에 미칠 영향
인류애가 사라지고 있다. 단편적인 삶에만 치중되어 있다. 한 번의 생에서의 지혜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욕심과 자아팽창으로 위아더월드가 되지 않고 있다. 서로 피터지는 경쟁속에 소모되고 있다. 인류가 정신적 유산을 흐르게 하지 못하고 까르마를 겹겹이 쌓고 있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온 이 까르마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후대에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엉킬 때로 엉킨 이 까르마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후대에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이것은 후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 전체에서 흐르는 까르마 줄기를 덮은채 하는 만족은 진정한 만족감이 아니다. 일생 전체를 넘어 모든 시대와 함께 할 때 이로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후대에 이어지며 인류는 더 번영하게 될 것이다.